김 준 92년 `소안도`에 갔다 어촌에 빠져버렸다. ‘뻘이 좋다’는 말을 이제 좀 알 것 같다. 바다엔 도시 사람의 눈요기가 아닌 삶이 있다. 늘 바다와 만나는 꿈을 꾼다. 매일 `바다`와 만난다. 현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새만금 사람들(5)
"갯벌이 없어져분디 뻘소리가 뭔 소용있어"
계화도 양지포구 생명살림천지굿
포구에 물이 빠지고 보름달이 올라올 무렵 비로소 굿은 시작되었다. 지난 8월11일 계화도 양지포구에서는 ‘계화도 사람들’, ‘새만금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 ‘민족극운동협회’, ‘문화연대’ 등이 주관하는 `생명살림 천지굿` 이 열리고 있었다. 백중사리라 물이 빠진 갯벌에는 방배며 쏘내기들이 몰골을 그대로 드러냈고, 게와 갯강구들이 도로 위에까지 올라와 천지굿을 구경할 참이다.
새만금 생명에 대한 천도는 우리 자신을 천도하는 것 백중날을 맞아 새만금 간척공사로 죽어간 모든 생명들과 바다에서 죽어간 이름 없는 고혼(孤魂)을 달래고 극락으로 갈 수 있도록 마련한 천도재. 개발로 인해 원통하게 죽어 가는 원혼을 달래고, 갯벌의 생물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열고자 하는 의미일 것이다.
“자기 자신의 본 모습에 대해서 전혀 살펴보지 못하고 상황에 얽매여서 순간 순간을 보내고 있는 자신, 새만금에서 희생된 생명들을 천도한다고 하는데, 새만금 생명에 대한 천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천도라고 생각하셔야 되요. 내 자신이 죽음이라는 상황에 직면해 있을 때 과연 어떤 입장일는지.” 천도재 백중법회를 진행한 `삼보일배` 수경스님의 앞소리다.
스님들에게 백중은 3개월 동안 공부하고 다 모여서 자기 자신의 허물을 다 드러내고 참회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적을 받아서 말, 행동, 생각의 잘못된 부분을 정리하는 우란분회(盂蘭盆會)날이란다. 민중들에게 백중은 한여름의 온갖 생명의 성장을 기리고, 그간 생업을 고비를 넘기며 한숨을 돌리는 날이다. 이 날 주민들은 그 동안 바쁘게 움직여 온 생업의 도구를 씻어둔다는 뜻으로 ‘호미씻이’놀이와 잔치를 벌이며, 전북지방에서 이를 ‘술멕이’라고 한다.
바닷가의 백중놀이는 백중사리의 물때에 맞춰 생명의 들숨, 날숨을 쉬는 자리이며, 갯벌이 천지 만물을 이루는 또 하나의 생명세상임을 확인하는 자리인 것이다. 낮에 생합을 캐던 상리, 중리, 하리의 계화도 사람들이 함께 한 천도재는 수경수님의 발원으로 마무리됐다.
...새만금에서 희생된 더 나가서는 온 지구상에서 개발독재로 희생된 모든 영가들을 천도하는 의식이 원만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주십시오... 새만금으로 희생된 일체 유주무주 영혼 일체 영가시여 지금 내 말이 들리십니까... 금강석처럼 튼튼한 몸을 받아 이생에 못다이룬 뜻을 받아 부처님 세상에서 참 세상을 이루십시오. 열반의 꿈을 이루소서. 모든 영가들의 왕생극락을 발원하오니...
땅과 강과 바람을 버린 그 날에... 천도재가 끝나자 날날이를 앞세우고 들어온 사물이 바닷가를 뒤흔든다. 마당밟기를 하는 동안에 무대에서 떡이 내려오고 과일이 내려와 주민들에게 나누어졌다.
어쩌면 계화도 주민들에게 `나눔`은 새만금을 잃고서 얻은 소중한 가치일 것이다. 저금통처럼 아무때고 필요하면 갯벌에 나가서 가져왔던 시절이 그들에겐 있다. 그냥 가져오기만 하면 되었다. 새만금이 막히고 어려움에 직면한 그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눔`을 받았다. 갯벌과 바다가 주는 `나눔의 정신`을 그들은 갯벌과 바다가 위험에 처하고 알게 된 것이다.
이어진 안혜경의 ‘대지의 노래, 침묵의 봄, 오래된 미래’는 내 머리를 한 대 뒤 흔들었다. 양지포구에 그녀의 노래를 듣고 돌아와 ‘안혜경’을 두드렸다.
그녀를 소개한 사이트(http://femimusic.jinbo.net)에서 찾아낸 herstory이다. “세상으로 열려진 많은 `길`은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걸어가기 두려운 길도 있고, 걸어가다 되돌아서게 되는 길도 있고, 가지 못한 길 위에서 후회와 연민을 던지게 되는 길도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가수 `안혜경`은 오랜 시간동안 다른 길로 한눈팔지 않고 묵묵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마주한 길 위에서 자신만의 음악활동의 세계를 넓혀온 역량 있는 가수입니다. 노래를 통해 여성문제, 환경문제, 사회적인 문제 등을 다루며 민중 속에, 여성 속에 항상 같이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 동안 대지, 여성, 환경, 평화를 노래했던 모양이다. 1995년 북경세계여성대회에 한국대표로 노래를 했던 그녀. 생명과 자연을 노래하고, 기지촌여성 기금마련 공연, 가정폭력방지법제정 기금마련 공연을 해왔다. 노래가 계속되는 동안 주민들은 그녀의 ‘몸창’(온 몸으로 하는 열창)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녀가 첫 노래는 ‘대지의 노래’ 였다. 온몸으로 하는 노래는 생명에 대한 신비감, 대지에 대한 풍만함, 인간의 탐욕을 타이르는 절규였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이야기 못하겠습니다’, ‘천도재를 끝내고 즐겁게 놀아야 하는데 맘이 그렇지 않습니다’. 그녀는 노래를 마치고 말문을 열었다. 라틴음악을 차용한 ‘대지의 노래’는 이미 계화도 주민들을 사로잡은 모양이다. 벌써 그녀의 이마엔 땀이 맺히고 마을 주민들은 그녀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양지포구 위엔 보름달이 떠올랐고, 달과 태양을 노래하는 동안 줄을 맞추듯 앉아서 노래를 듣는 ‘쏘내기(생합을 캐는 아주머니를 싣고 다니는 배)’, 노랑조개와 소라를 긁는 방배(고대구리 배의 일종)도 연신 흔들렸다. 대지가 만들어낸 갯벌은 분명 그녀의 노래를 반겼으리라. 이어지는 ‘오래된 미래’에서 그녀는 ‘망각의 세월’을 소리치며 흐느꼈다. 아니 그건 흐느낌이 아니었다. 미래를 찾으려는 오늘의 몸부림일 것이다.
이런 노래가 빨리 없어지길 10년 전부터 기원하면서 만들었던 노래. 제발 이런 노래 안 불렀으면 하는 바램을 전하면서 불렀던 ‘침묵의 봄’.
새들이 울지 않던 그 날, 봄은 침묵했고 강이 죽어간 그 가을 열매를 거둘 수 없었네 땅과 강과 바람을 버린 그 날에 땅과 강과 바람은 인간을 거두지 않았네 검은 비 쏟아지던 그 날, 여름은 절망했고 바람이 얼어붙은 그 겨울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네 땅과 강과 바람을 버린 그 날에 땅과 강과 바람은 인간을 거두지 않았네
임현미의 생명 살림의 춤
갯벌이 없어지면 조상도 없어지고 고향도 없어져불고... 아무래도 주민들을 한바탕 놀이로 몰입시키는 것은 마당극이다. 1981년에 창단한 전남의 대표적인 마당극패 ‘갯돌’. 그 동안 ‘목포의 눈물’, ‘암태도’, ‘병신난장’ 등 마당극을 올렸다. ‘뻘소리’(작, 연출 손재오)는 바다와 갯벌을 생계로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마당극 특유의 재담과 신명, 역동적인 집단무, 현장성을 매개로 한 시의성 등을 전통연희의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뻘소리는 갯벌의 개발과 보존이라는 당면한 현실 앞에 처해 있는 마을 사람들의 희망과 좌절을 겪으면서 인간의 자연이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상생할 수 있는가를 제시하고 있다(뻘소리 리플렛 참조).
댓골 할머니는 15년 만에 고향인 청산마을로 돌아온다. 청산마을 사람들은 간척으로 바다와 갯벌에서 생계를 이을 수 없어 보상금을 받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네 이장인 함평영감은 보상금문제로 분주히 주민들 이사 준비에 앞장서 일을 하고 있다. 한편 청산마을의 민요 ‘뻘소리’리가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시연을 앞두고 함평영감의 주도하에 마을 사람이 맹연습을 한다. 불동연감은 그곳에서 간척공사 이후 들떠 있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태도를 나무란다. 뻘소리 연습장에 나타난 술취한 불동영감과 이장 함평양감이 한판 붙는다.
야 이놈아 보자보자 항께 동네사람들이 보상금을 한푼이라도 받아서 객지에서...... 우리 동네만 위한 일이냐 우리도민 전체를 위한 일이고 나라를 위한 일 아니냐.
이놈이 똑똑하네 국회의원이나 나갈 일이제 뭔났다고 이장허냐 보상금 적다고 하던 사람들이 보상금 쬐깐 더주니까......... 갯벌이 없어지면 조상도 없어지고 고향도 없어져불고 철새인생이 된다는 것을 왜 모르냐 말이여 개발 아 좋제, 개발 좋제 그랴, 그랴
개발 좋다던 불동영감은 간척공사 건설업체로부터 용두산에 잠든 할머니를 옮겨주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간척에 필요한 돌과 흙이 필요하다는 이유란다. 절대 옮길 수 없다는 불동영감과 공사를 강행하는 건설업체. 불동영감은 낫을 들고 용두산으로 달려가지만 트럭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다.불동영감의 죽음으로 마을은 동요하고 용두산에서 매향비가 발견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공사는 중단되고 주민들은 갯벌에 매향비를 묻고 갯벌지킴을 다짐하는 솟대를 세우면서 ‘뻘소리’는 문을 닫았다. 청산마을 이장 함평영감의 넋두리다.
우리 대대로 물려받은 뻘땅도 바다도 모두 왜놈들 것이 되어 부렀단 말여 인자 우리 청산의 운명은 하늘에 매끼는 수밖에. 요 향나무가 침향이라는 것이여 비문에도 적혀있듯이 왜놈을 만나 마을 지키고자 했던 청산 조상님들의 희망이 담겨있단 말이시 여보게들 훗날 새로운 시상이 올 수 있도록 침향을 묻어 매향을 허드라고. 혀서 우리는 이렇게 청산지키고 아꼈노라고 전하잔 말이시 여보게들 옛날 일이사 다 잊어불고 맴을 고쳐먹드라고 요걸 보드라고 요것이 청산 사람들의 몸댕이여 뻘땅을 지키고 바다를 지키고 청산을 지키고자 했던 진정한 몸댕이란 말이여 인자 우리는 이 침향을 다시 묻어 후대에 청산을 지키고 싸웠다고 전하드라고 자 매향을 시작허드라고
생합이, 망둥어가, 농게가, 숭어가, 백하가 영원할 것을 기원하는 강강수월래 마당극의 백미는 뒤풀이다. 놀이꾼과 참가자들이 함께 어울려 난장판을 만드는 것이 마당극의 참맛. 그런데 뻘질만 했던 계화도 사람들 도통 나서질 않는다. 언제 마당극을 보았다고 이런 놀이판에 익숙하겠는가. 전주의 소리판에나 가야 구경할 수 있는 마당극이 계화도에서는 영 어색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갯돌 단원들의 능숙한 강강수월래는 이내 그들을 판으로 끌어냈고, 술래잡기까지 하면서 흥겨운 한판을 만들어냈다. 어색해하던 주민들도 하나둘 손에 손잡고 포구를 잡아 돌았다. 모두들 새만금에 생합이, 망둥어가, 농게가, 숭어가, 백하가 영원할 것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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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에게 백중은 3개월 동안 공부하고 다 모여서 자기 자신의 허물을 다 드러내고 참회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적을 받아서 말, 행동, 생각의 잘못된 부분을 정리하는 우란분회(盂蘭盆會)날이란다. 민중들에게 백중은 한여름의 온갖 생명의 성장을 기리고, 그간 생업을 고비를 넘기며 한숨을 돌리는 날이다. 이 날 주민들은 그 동안 바쁘게 움직여 온 생업의 도구를 씻어둔다는 뜻으로 ‘호미씻이’놀이와 잔치를 벌이며, 전북지방에서 이를 ‘술멕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