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소리여도 이 소리는 듣기 좋네

 목포 극단 `갯돌` 쌍암공원서 `암태도` 공연

저녁 8시, 첨단지구 쌍암공원, 무더위를 피해 나들이 나온 시민들로 가득하다. 모닥불 같은 불빛이 옹송거리고 있는 공원 중앙으로 가는 길 양옆에 마장기가 펄럭이고 있다. 지난 13일 개막한 놀이패 신명 주최의 ‘광주우수한마당큰잔치’ 넷째날이다.  고성오광대춤, 진도북놀이가 시연된 데 이어 목포지역 극단 ‘갯돌’의 마당극 ‘암태도’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다.

마당극의 최대 장점은 아무리 심각한 주제라도 그것을 멋과 흥, 웃음 속에서 풀어낸 다는데 있을 것이다. 과연 유모차를 탄 어린애부터 칠순의 노인까지 즐거워서 죽겠다는 표정이다. 판이 농민들의 분노와 슬픔으로 넘어가면 함께 울고 화낸다. 걸쭉한 야담이라도 나올라치면 박수를 치고 난리다가, 일본‘놈’이 나오면 야유를 퍼부은다. 함께 투쟁하자고 관객들을 ‘착출’하는데 뒤로 빼는 사람은 없다. 극이 3할쯤 진행됐을 무렵, 가설무대를 메운 400여 관중들은 이미 암태도 사람들이 되었고, 극단 갯돌의 단원이 되어 있었다.

공연 내내 일곱살박이 딸에게 마당극 내용을 ‘번역’해 줬다는 김상수(37)씨는 “진정한 문화, 진짜 공연이 이런 것”이라며 “나랏돈 지원이 많이 돼서 꾸준히, 그리고 여러 곳에 이런 공연이 펼쳐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날마다 놀러 나온다는 칠순의 할머니는 “똑같이 시끄러운 소리라도 이 소리는 듣기 좋네, 젊은 사람들이 참 잘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놀이패 신명의 손미연씨는 “약장수 공연인 줄 알고 멈칫거리다가 주저앉아 관람하는 시민들이 많다”며 “제대로된 홍보만 이뤄진다면 찾아가는 공연, 지역민과 함께 만드는 문화의 전형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향후 ‘큰잔치’에 대한 기대를 내보였다. ▶관련기사

1920년대에 벌어진 암태도 소작쟁의는 일본경찰과 밀착한 지주가 80%라는 천문학적인 소작료를 징수하자 이를 40%로 인하하기 위해 소작회를 결성하면서 시작됐다. 소작회 간부의 구속과 이에 항거한 추수파업, 400여명이 배를 타고 목포로 가는 원정투쟁, 강제징수와 격렬한 몸싸움, 굶어 죽기를 각오한 소작회의 아사동맹 등의 투쟁이 암태도 일대에서 벌어졌고, 결국 일제와 지주가 무릎을 꿇고 소작료 인하와 함께 구속된 간부들을 석방시켜준 `승리`의 사건이 암태도 소작쟁의의 골격이다.

인터뷰 손재오 갯돌 상임연출가 -지난해에 초연된 작품인 것으로 알고 있다. 목포와 서남해안의 숱한 역사 중에서 암태도 소작쟁의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갯돌’이 창단됐던 1981년 작품이 암태도 소작쟁의를 다룬 ‘나락놀이’였다. 작년은 갯돌 창단 20주년이 되는, 말하자면 성인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창단 당시의 청년정신을 되살리고자 하는 의미에서 같은 대본, 같은 주제를 마당극으로 올렸다. 또 1923∼4년 암태도의 상황과 쌀값 폭락이라는 지금의 농민현실이 본질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는 판단도 했다. 갯돌 스스로의 다짐과 현실문제 둘 다를 고려한 결과 암태도 소작쟁의 문제를 극으로 올렸다. -갯돌이 창단됐던 당시의 ‘나락놀이’와 지금의 ‘암태도’가 같고, 또 다른 점이 있다면? △선배들의 작품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대본과 회고를 근거로 말한다면 81년의 공연이 지금보다 훨씬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당시의 작품이 더 촌스럽고 투박하고, 욕도 적나라하게 사용됐다고 한다. 지금의 작품은 많이 걸러진 셈이다. 현실운동적인 성격이 강했던 그때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지금의 조건이 그러한 ‘차이’를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기본 골격은 동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암태도에서 첫 공연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분위기는 어땠나? △섬 주민 700여명이 마당판을 채웠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연을 찾은 것이다. 자신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마당극과 같은 연희가 흔하지 않다는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섬주민들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단원들이 공연 내내 이상한 ‘들뜸’을 경험했고 끝나고 나서는 모두 울었다. 1920년대의 상황과 인물들이 마당판과 단원들에게 파고드는 느낌이랄까, 일종의 ‘접신(接神)’같은 걸 경험한 것 같다. -갯돌의 활동무대는 주로 어디인가? △목포를 중심으로 해남 무안 영암 신안 등 서남해안권이다. 다른 극단에 비해 독특한 점이 있다면 섬지역 공연이 많다는 점이다. 목포라는 도시도 그렇지만 특히 섬지역의 특성은 거칠면서도 투박한 정이나 공동체 정신이 강하다는 점이다. 또 풍어제 같은 전통이 남아 있어 ‘판’을 벌이기에는 아주 좋다. -갯돌을 포함해 전통문화의 계승을 책임지고 있는 마당극단들의 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교과서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역시 ‘운동성과 전문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일이다. 전문성의 구체적 내용이 민족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민족성은 꼼꼼한 조사와 부단한 연습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이번 ‘암태도’ 공연만 하더라도 섬주민들의 증언과 법원 판결문, 송기숙씨의 소설 등을 참조했다. 또 운동성에 관해서는 홀로하는 문화운동이 아니라 노동, 농민조직과의 연계를 통한 공동보조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전과는 다른 세심함과 총체적인 사고가 필요한 때다. 이정우 기자  arrti@jeonlado.com